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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단편 A

화폭 - 질투 (1)

by bread_notes 2024. 11. 29.

- 질투 -

 

그녀는 본인의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에서 사랑을 담은 작품들을 중심적으로 그렸으며

단 한 폭의 추상화에서도 그녀가 담은 사랑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고,
그녀의 정제된 화풍 속에 스며든 사랑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매료시켰다.

그녀는 순식간에 주목받기 시작했고
수집가들과 기자들이 그녀의 그림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새로운 갤러리에서 그녀는 다음 작품에 대해 물어보는

수많은 평론가들과 수집가, 기자들 앞에서 자신의 계획을 밝혔다.

 

"새로운 작품을 구상중이에요. 주제는 교감이에요.

앞으로 3개월에 한 번씩 다른 분들과 협업을 하려고 합니다.

꼭 같은 화가나 작가가 아니어도 다른 분야의 분들과 같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보려고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녀의 사랑을 담은 단독 작품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에게
이 뜻밖의 선언은 충격이자 설렘으로 다가왔다.

 

사람들은 놀라움과 호기심이 섞인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이내 한 기자가 손을 들며 물었다.

 

"협업하시는 분들은 어떤 방법으로 선택하시나요?"

 

그녀는 웃으며 이야기했다.

 

"첫 협업은 우선 비슷한 계열분과 진행하고 싶네요.

우선 같이 할 의지가 있으셔야 하겠죠?

제가 막무가내로 작품 협업을 강요할 순 없으니까요."

 

그녀가 갤러리 티켓을 들며 말했다.

 

"티켓 뒤편에 이름과 직업 연락처를 쓸 수 있게 만들어 놨어요." 

 

그녀의 말에 모두가 티켓을 찾기 시작했다.

 

"첫 협업은 오늘부터 3주간 제 갤러리에 방문하신 분들 중

티켓 뒷면에 정보를 적으신 후 출구 티켓 회수함에 넣으시면 연락을 드리려고요."

 

3주 후

 

사무실로는 말도 안 되는 양의 티켓이 나뒹굴고 있었다.

그녀의 매니저는 이 상황에 질려버린 듯

모든 티켓을 하늘로 휙휙 날렸다.

 

"작가님 갤러리 티켓으로 하는 건 엉망이라고 했잖아요..."

 

매니저는 울먹이며 말했다.

 

"하하하... 나랑 협업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이 정도 일 줄 몰랐어..."

 

그녀도 티켓 더미에 쌓여 멍하니 바라보며 말했다.

 

"갤러리도 엉망이 됐잖아요. 작가님 싫어하는 비평가들이 티켓 팔아먹는 돈에 미친 여자라면서 욕도 하고...

아니 어떻게 작가님이랑 같은 동문인 사람까지 기사에 방송에 SNS에까지 신랄하게 비평을 하는 거예요?"

 

매니저는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저었다.

 

- 당신 같은 예술가는 가짜 -

 

- 돈 벌 생각만 하는 사업가 -

 

이따금 티켓에 욕이 써져 있는 것도 있었다.

 

"하하... 그을쎄... 나도 잘 모르겠는걸..."

 

그녀는 힘없이 웃으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매니저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한숨 쉬며 말했다.

 

"작가님 어떻게 나눠드릴까요? 이 상태로는 도저히 안 돼요."

 

"같은 화가나 일러스트레이터들은 빼줘. 평론가나 비평가 쪽을 모아줄래?"

 

"네?"

 

매니저는 깜짝 놀라며 그녀를 바라봤다.

 

"평론가 분들이요? 그분들은 작가님 욕헀던 사람들도 많잖아요."

 

"괜찮아. 첫 협업이니까."

 

"하... 알겠어요. "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매니저에게 두 덩이의 티켓 뭉치를

그녀의 책상 앞에 내려놓으며 매니저가 말했다.

 

"왼쪽은 호의적이거나 중립적인 평론가와 비평가이고

오른쪽은 부정적인 분들이에요."

 

매니저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냉큼 오른쪽 티켓 뭉텅이를 받아 하나씩 이름을 확인했다.

 

"그쪽이 아니길 빌었는데"

 

매니저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가 흥미롭게 오른쪽 티켓을 을 바라보는 걸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앗... 이 사람은 그 사람이야? 이소라라는 이름. "

 

"네.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분 맞아요. 작가님을 항상 비판하시던 분이요."

 

이소라, 같은 미대 동문이었다. 화풍이 비슷해 곧잘 지냈지만

작품에서 나오는 분위기와 사람들의 반응들이 비교되면서 졸업할 쯔음에는 둘의 사이가 틀어졌다.

졸업 후 그녀는 화가로 활동했지만 이소라는 비평가로 활동하며 신랄하게 그녀의 그림을 비판했다.

 

"마약처럼 그림을 판다느니, 사람을 중독시킨다느니, 저주받은 서큐버스의 그림이다 뭐다 

여러 가지 말도 안 되는 비평만 늘어놓는 사람이잖아요. 그렇게 욕하고 왜 협업 신청을 했을까요?"

 

매니저는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듯이 이마를 누르며 말했다.

 

"내 작품에만 그러는 거니까"

 

그녀는 한참을 이소라가 신청한 티켓을 손에 들고 한참 바라보았다.

 

"작가님 제발...  대면이라도 하고 결정하세요!"

 

매니저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매니저의 말을 무시하며 대답했다.

 

"괜찮아."

 

웃는 표정으로 매니저를 보며 말했다.

 

"이 사람이랑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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